안나푸르나 라운딩 - 7일차

2020. 1. 15. 17:45해외 등산/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여행기간 : 2019년 2월 13일 ~ 27일 (14박 15일)

여행종류 : 해외 등산, 자유 여행

 

 

제 7일차 (2월 19일) 화요일

 

이동 경로

 

로우피상(Lower Pisang,  3,240M) ~ 두크레 포카리(Dhukure Pokhari) ~ 브라탕(Bhratang) ~ 탈레쿠(Thaleku) ~ 차메(Chame)

 

=> 애초 일정 : 틸리초BC(Tilicho Base Camp,  4,150M) ~ 틸리초 호수(4,920M) ~ 틸리초BC(Tilicho Base Camp,  4,150M) ~ 쉬르카르카 (Shree Kharka,  4,070M)

 

 

변함없이 6시 30분경에 일어나 준비를 한다

화장실을 가고 밥을 먹고 짐을 정리하고..

 

다녀온지 1년이 지나니 도대체 뭘 먹었는지 기억조차 없다

애초에 사진을 찍질 않아서...

 

다음에.. 

외국의 어느 산을 가면 뭘 먹었는지 찍어놔야 겠다

가격은 둘째치고라도 .. 기억이 없으니.. 이거야 원..

 

무슨 볶음밥 비슷한거 먹었던 거 같다

 

따라의 짝퉁 노스페이스 등산화

1만원 주고 구입했다고 한다

겉의 천은 다 찢어지고 바닥도 터지고..

처음 만났을 때.. 차메를 출발할 때 순간접착제를 사와서 붙이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 모습을 보고 안 쓰는 등산화를 가져오지 않은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었다

트레킹 내내... 설산 속에 있는 내내...

걷는 동안은 조금 신경쓰이던 것이 저녁 때 난로 앞에서는 너무도 미안해지기만 했다

 

난...

풀 장비를 갖추고도 뭔가의 불편함을 느끼고 더 나은것이 뭐가 있을지를 생각하고 있지만

따라는... 이곳의 다른 가이드나 포터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것만 같았다

하산하면서... 눈이 없는 곳을 걸으면서 보게된 그들은 모습은..

슬리퍼, 일반 운동화, 츄리닝, 청바지 등.. 다양했었다

나처럼... 

장비를 갖추고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들에 비하면...

난...

한심했다

오늘 이후로는 하산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여 느긋하게 준비를 했다

 

밤새 눈도 많이 왔고 하늘은 여전히 뿌옇기만 하다

모든 컨디션은 좋았는데....

입술이 계속 문제였다

화끈거렸고 퉁퉁 부어 있었다

옷은 며칠째 같은 것을 입고 있어 냄새가 조금은 났다

그나마 겨울이라 땀도 덜 나고.. 냄새도 덜 나는 것 같았다

08시 50분

차메까지 5~6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어퍼피상까지 올 때는 7시간 넘게 걸렸는데?

하산하는 것이니 빠른가보다 하며 출발한다

 

하산 시작하기 전에 숙소 사진 한장

간판이 길 쪽이 아닌 건물 안으로 들어와 오른쪽 위에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의 대부분의 간판이 강조하는 것이

Wi-Fi, Hot Shower 였다

숙소 내부를 좀더 찍었다

왼쪽 끝의 2개의 기둥 사이의 창이 내가 묵었던 방이었다

사방천지는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고

하늘은 구름인지 안개인지로 가득 차 있었다

마을을 벗어나 개활지가 나오니 완전 다른 느낌이 들었다

올라갈 때는 어퍼피상으로 가서 이곳을 보지 못했고

훔데를 지나서야 좀 넓은 곳들이 나왔었다

게다가 그때는 날이 좋아서 푸른 하늘과 하얀 눈을 같이 봐서 

그리 이질적인 느낌이 들진 않았었다

거의 1주일을 면도를 하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수염이 덜 자랐다

이것은.. 지난번 피부과 의사가 자기 멋대로 제모를 1차례 해서 그렇다

그 당시 난...

한동안 자라지 않는 수염으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었다..

짧은 10여분의 이 길에서 난 여러 생각을 했다

화이트아웃, 설맹, 조난..

물론 이곳은 굉장히 안전한 평지이다

 

내가 생각한 것은...

안전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이런 곳에 있다면..

여기서 조금의 눈보라가 친다거나 한다면..

그것이 화이트아웃이고..

행여나 그 후 날이 좋아졌지만 선그라스가 없다면...

그것이 설맹이 되는 것인가?

이런 생각들이 무수히도 들었다

그래도 눈으로 봤을 때는 모든 눈들의 형상이 생생하게 보였었다

하지만 카메라로 찍으면 그냥 하얀색뿐이다

어느곳이 높고 낮은지.. 

어느곳이 길인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좀 더 시간을 갖고 찍는다면 표현이 됐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실력은 이정도일 뿐이다

10시 11분

3일전(2월 16일)에 점심을 먹었던 곳

두크레 포카리에 도착했다

유투브로 상어 노래를 듣고 있던 아이 생각이 났다

같은 집으로 들어왔다

여전히 이곳만 영업 중인거 같았다

며칠 전에 왔던 곳이라 그런지 조금은 뻔뻔해진 듯하다

주방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보니

괜찮다

고 했다 (물론 그렇게 이해한 것이다. 말이 통해서 알아들은 것은 절대 아니다)

화덕이라고 그래야 하는지 

난로라고 해야 하는지

바깥은 눈을 주어다가 이곳에서 녹여

녹은 물로...

설겆지, 음용수 등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난...

깨끗해?

라며 녹은 물은 살펴봤지만..

여러 이물질이 조금은 있는 것이 보였다

 

난로 뒤로는 싱크대? 및 찬장이 있었다

수도는 얼어서 사용이 불가이고

모든 것들이 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오랜 세월과 화목 사용으로 인한 연기 등으로 지저분...

그랬다

우리에겐 지저분이지만

그들에겐 평범한 것.. 대수롭지 않은 것.. 일지라...

10시 40분

화장실을 들르고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길에 오른다

아... 기억이 이상하다

이 사진을 보니 어제 잃어버린 물병이 생각난다

분명 어제 잃어버렸는데

그것을 떠올린 장소나 환경이 이 사진인 것만 같은 건 뭐일까..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이미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라 기억이 흐트러져 있을 수는 있다

지금은 2020년의 설날 4일뒤이다

난 작년에 설날이 지나고 7일 뒤에 네팔 안나푸르나로 향했다

눈이 없었을 때 이곳은 도로이다

전신주가 있는 곳은 모두 도로인 것이다

 

지금 이 사진을 보니..

다시 가고 싶다

비록 목적한 완주는 못했지만...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지만..

하산하는 이 길도 걷기가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불과 30cm 정도로 러셀이 되어 있는 길이 

양발이 닿은 곳 중 한곳이 좀 더 움푹 들어가 있어 

수시로 발이 빠졌다

왼쪽발이...

약간은 절뚝 거리며 걷거나

타이거스탭처럼 1자로 걷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

마음이 편한 순간에 이런 눈을 봤다면 즐거움과 행복이 배가되었겠지만

난 아쉬움을 댄기마낭에서 강가푸르나를 보며 남겨두고 왔기에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걸을 뿐이었다

무사히 내려가기만 하자.. 라며...

11시 30분

강을 건넌다

마치 이 출렁다리는 안나푸르나(그 산군 속에 있는 거지만)와 마을로 가는 경계 같은..

이 다리를 건너면 설원의 길이 끝나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따라

배낭을 어깨로만 짊어지고 면청바지를 입고

짝퉁 등산화를 신고 양말에 비닐봉투를 뒤집어 쓰고

이 일을 하고 있다

 

나보다 어린 친구인데 어찌 외모는 형 같다는 말인가..

생활 환경에서 오는 차이가 이리도 큰 것인지는 미처 몰랐다

동남아에서 조금은 느꼈지만.. 

이곳은 거기보다 더 극한직업인 곳이어서 그럴 것이다

따라가 몇장을 찍어줬지만.. 

맘에 들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지..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으니..

선그라스가 싸이클용이어서 그런지 정면에서 보면 저리 눈매가 무섭다

 

만약을 대비해서 자켓(아크 베타 LT)을 하나 더 가져갔지만 사용한 적은 없다

날이 좋아 소프트쉘(하그로프스 토케이)만 입거나

그 조차도 벗고 다녔기 때문이다

차메에서 첫날 올라갈 때

그리고 지금 내려올 때

단 2일만 클라터뮤젠 알그론을 입었다

무겁고 디자인만 이쁜 자켓...

스패치는 처음 등산을 배울 때인 10여년 전에 산 건데

실 사용은 10회 언저리인거 같다

눈이 그리 많이 온적이 없었으니....

다리를 건너 주변을 둘러 보았다

많이 본 것 같은 다리가 보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차메에서 출발할때는 저 다리를 건너 어퍼피상으로 올라갔었다

약한 경사의 눈속에 파묻힌 길을 걷기도 하고

폐허가 된 롯지에서 쉬면서 독일 여자에게 행동식도 건네주었었다

불과 며칠 전이었는데.. 오래된 기억인 것만 같았다

 

로우피상으로 바로 연결된 건 이 출렁다리인 것이다

철 구조물로 된 저 다리는 차가 다닐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고

눈이 없을 때는 차로 어퍼피상을 갈 수 있는 것 같았다

 

며칠 전에 저 다리를 건너 올라갈 때도 중간 중간에 지프로드가 보였으니 말이다

올려다 본 하늘은 옅게 걷히는 듯 했다

온통 하얀 눈과 구름 투성인 곳에서 저렇게 파랗게 열리는 하늘이 

신기하기만 했다

여전히 러셀이 되어 있는 길의 한 쪽은 사진처럼 푹~~ 빠져버린다

날씨의 영향으로 저 부분은 덜 언 것이다

등산화는 이미 다 젖어 있었다...

하나의 바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산

팡다단다

눈이 녹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축축한..  

그런 바위가 되어 버렸다

바위의 한쪽 부분을 깍아 만든 임도길은 오직 사람의 손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장비가 들어와 작업을 할 공간이 보이질 않기 때문이다

함마 드릴로 일일이 다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윗 부분의 보이는 전선은 내 키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저 높이까지 사람이 작업을 할 것이라면...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다

이런 곳에서 그냥 작업하는 것도 위험한데

저 높이에서 하는 거라니...

 

난 군대가기 전에 노가다 알바를 했었다

그때 2번 정도 도로 깨는 것을 했었는데 

그때 함마 드릴을 사용했었다

내 허리높이의 장비에 무게만 20~30kg는 족히 되는 그 장비를 사용하기 위해선

온 몸의 체중을 실어야만 작업이 가능했다

20여년이 지난 일이니 지금 장비가 월등히 좋아졌겠지만...

그런 장비를 저 높이에서 하다니..

호도협에서 보았던 그런 협곡 길이 생각났었다

고난의 세월을 통해 이루어진 교역로...

 

이곳에서 행동식을 먹으며 잠시 쉬어간다

마음은 아쉽고 심란했다

이 거대 바위 산을 지나고 나서 뒤돌아 본다

이길로...지프도 다니는 것이다

교차하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사진의 오른쪽.. 하산하는 방향에는 눈사태로 인한 것인지

많은 눈으로 덮여 있었고

그 중간에 러셀로 인한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 길이 가장 무서웠다

눈으로만 만들어진 경사진 길이었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

그 밑은 낭떠러지 계곡이었기 때문이다

계곡물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물살도 상당했었다

12시 32분

브랑탕 쯤에서 찍은 것 같다

산의 일부를 깍아 도로를 만들었기에 한쪽은 눈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곳곳에 작은 산사태가 나있었고, 바위며 나무며 떨어지고 꺽여있는 곳이 많았다

위태위태하게 버티고 있는 나무들도 있고 쓰러진 나무들도 있고...

이 무렵..

배가 고팠으나 출발전 들은 시간으론 1시간 남진 남아 있는 것 같아 그냥 가기로 한다

식사를 할 수 있는 곳도 없었지만..

하지만.. 이런 것들이 가끔씩 내가 따라에게 불만을 갖게 하는 요소였다

미리 설명되지 않는 것들...

(대화가 안되지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지만...)

모두 이번 폭설을 전후해서 쓰러진 것들일 것이다

이 나무는 전선에 걸쳐져서 통행을 막지는 않았지만 전선이 얼마나 버틸지는 알수가 없다

저것이 끊어지면 주변 마을의 전기는 모두 끊어지고 

가뜩이나 폭설로 대부분이 철수한 그곳들은 더욱 암흑의 세상으로 빠져들 것이다

올라갈 때는 시간상 그냥 지나친 곳이었는데

지금은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저 계곡 넘어서만 눈이 저렇게 쌓여있는 이유를..

마치 제설을 하고 저 곳에 모아둔 것 같은 이유를...

 

처음에는 저쪽 산 사이의 계곡에서 눈사태가 난 것인줄 알았었다

좀 더 걸어 정면에 보이는 곳에 도착하니 잘 알 수 있었다

저 좁디 좁은 계곡 사이로 눈이 쏟아져 내렸고

날이 따스해져 녹은 눈들이 폭포를 만들어 쉴새없이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저 물들이 눈을 덮고 그 물은 다시 얼고

새롭게 눈이 내리고.. 물이 다시 얼고...를 반복해서 이런 신기한 형상이 된 것이다

물론... 나의 추측이고 가정이다.

 

13시 51분

차메가 보이기 시작한다

브랑탕 쯤에서 1시간 남짓 남은 것 같았으나..

역시나 2시간에 걸쳐 도착했다

 

저곳에서 나의 트레킹이 시작되었었다

그리고 그 끝이 나려 하고 있었던 거다

애초... 나의 계획.. 예상... 바람... 은 이것이 아니었는데

 

끝없이 가고.. 걷고.. 힘들어하고.. 숨이 막히는 그 고통속에서..

내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으로 가서..

한없이 바람을 맞고 싶었었는데..

그것은 한낱 바램이었고 꿈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렸다...

 

참담하고... 암울한 그 심정..

그때의 기억들...

14시 22분

차메에 도착을 했다

출발할 때 통과했던 일주문 같은 것... 

이름은 모른다

그때는 흐린.. 하얀 하늘뿐이었는데

지금 올려다 본 하늘엔 푸르름과 눈발이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이름 모를 산들이 신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올라갈 때는 저 일주문 같은 출입구를 통과해서 갔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쪽의 전통이라 생각하며...

출발할 때는 좀 큰 다리를 건너서 마을을 벗너난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그 다리를 건너지 않고 좀 더 내려와서 이런 출렁다리를 건넜다

이후 몇번 더 출렁다리를 건너지만 건널 때마다 왠지 모를...

경험해 보지 못해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는 그런 불안감이 늘 함께 했었다

 

따라는 이곳에 도착하면 온천을 할 수 있다고 했었다

위치는 이 다리를 건너지 않고 내려가면 있다고 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기만 하다 

안개인지 눈발인지...는 더 걷히면서 푸르른 하늘이 잘 보이고 있었다

정말 신기하고 신비한 느낌이었다

여기선 그 흔한 구름 한점 제대로 보질 못했었다

바람에 날리는 눈발.. 흐린 하늘 그것만이 보였었다

 

숙소는 처음 차메에 왔을 때 철수하는 한국인들이 많아 묵지 못했었던

포탈라 게스트하우스로 했다

(아주머니의 소개로 언니분이 운영하시는 문라이트 롯지로 갔었다)

 

안나푸르나에 있는 태반의 트레커들이 철수를 했기 때문에 지금은 숙소가 비어있었다

마낭까지 동행아닌 동행이었던..

마낭에서 먼저 철수한 그 한국인들이 먼저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선크림을 바르지 않아 얼굴에 약한 화상을 입고 있었고

내게 온천을 추천해 줬다

가까우니 다녀오라고.. 가면 탈의실이 있지만 조심해서 사용하면 된다고

자신도 꽤 오래 있다 왔다고...

 

난 그에게 숙소 아주머니에게 얘기해서 감자를 갈아서 얼굴에 붙이고 있으라고 알려줬다

그러면 좀 나아질거라고...

방은 2층을 배정받고

숙소에 짐을 정리하고 온천을 갈 준비를 하고..

1층으로 내려와 아주머니에게 감자 갈아서 아까 그 친구에게 줄 수 있겠냐고.. 부탁을 하고..

다행히도 아주머니는.. 아니 남편분과 함께 두 부부는 한국에서 십수년을 일 했었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말을 거의 이해하셨고 한국 음식을 하실 수 있으셨다

 

지금 생각이 났다

차메에 진입한 것은 14시 20분경이고 온천을 가서 찍은 아래 사진은 16시이다

1시간 30분 동안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었다 

1년이나 지났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난.. 숙소에 도착을 해서

신라면을 먹었다!!!!!

아주머니에게 점심 먹을 것이 뭐 있냐고 물어보니 

'신라면 드릴까요?' 했었다

 

아주머니가 끓여주신 신라면과 직접 담그신 깍두기를 함께...

그리운 한국의 맛이었다ㅜㅜ;;;

 

그렇게 난.. 점심을 먹고 짐을 정리하고 옷을 준비하고 20여분 정도를 걸어서 온천으로 왔다

하늘은 오락가락 했다

안개가 자욱했다가 바람에 흩날리며 푸르름을 보여주고....

온천에 도착했을 때 서양인 1명과 네팔인 1명

그리고 다 끝나고 돌아가는 분들 두어명이 있었다

 

옆에 탈의실에 조심스럽게 옷을 벗고 못으로 된 옷걸이에 옷을 걸어놓으며..

이거 괜찮은거야?

하며 카메라를 들고 나와 온천으로 들어왔다

정말 오랫만에 물 속에 몸을 담그고 물로만 이라도 씻으니 좋았다

 

테이핑을 미리 준비해서 갔었다

2~3차례 사용할 수 있는 분량으로..

발목에도 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국내 등산다닐 때도 테이핑은 무릎, 발목을 함께 한다)

미리 종아리 부근의 털들은 다 밀어버렸다

테이핑이 잘 달라붙도록 하기 위해서...

저곳이 탈의실이다

왼쪽이 남자, 오른쪽이 여자이다

탕은 남녀공용이었고

깊이는 저 물나오는 곳이 내 목 정도 였었다

좀 전에 물을 뺐다고 했었다(숙소의 그 한국 친구가)

그리고 다시 물을 받는 중이긴 한데..

바닥에는 이끼같은 것이 어느 정도는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물 속에서 맘 편히 있는 것이 호사였다

 

하지만...

이 온천의 위치가 좀 그랬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한쪽면은 흙 절벽이고..

반대쪽은 계곡이었다

따라에게 안전하냐고.. 하니

당연한 거지만... 안전하단다

탈의실 쪽의 하늘은 맑기만 한데 

뒤돌아 본 하늘은 뿌옇다

 

탕? 속에서 몸을 녹이고 있는데 서양 남자 한명이 들어왔다

따라와 함께 어쩌고 저쩌고 꽤 얘기를 했는데

기억이 거의 나지 않지만

나이가 20대 중반이란 것만 기억난다

나이를 정확히 몇살이라 했는데.. 딱 거기까지다

네팔에 여친이 있다고 했었다

난...

부러웠다

진심

저렇게 외국 여행을 다니면서 스스럼 없이 현지의 애인을 만들 수 있다니

내겐 없는 재주이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온천탕에 올라와 계곡을 찍어본다

물소리가 우렁차다

미끄러져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냥 즉사다

뒤돌아서 온천의 전체 사진을 찍어보았다

그렇게 20여분을 있다가 밖으러 나와 깨끗한? 차가운 물로 씻었다

따라가 놀라워하는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걸로 빨래 등을 하는 네팔인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찬물로 헹구는 모습이 신기한 것 같았다

난 정말 개운하기만 했다

따스한 물도 좋았고

시원한 물도 좋았다

그렇게 온천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사진들을 정리해서 보니..

이 당시 난 사진을 굉장히 적게 찍었다

순간순간 자주 찍어서 그 순간을 모두 상세히 기록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래야 글이 적을텐데..

사진이 없으니 글이 길어진다;;;

 

숙소로 돌아와서 잠시 뒤에 저녁을 먹었다

당연히 기억나지 않는다

한국음식을 해주신 것 밖에는...

(폰을 뒤져 노트를 찾아보니 수제비를 먹었었다..ㅋㅋㅋ)

 

그리고 여느 저녁때와 마찬가지로 난로 앞에 모여 등산화를 말리고 있었다

이 숙소에는 한국인 2명과 가이드겸포터 2명..

뿐이라서 난로 앞이 넉넉했다

 

그리고 아주머니도 친절하셔서 나무도 듬뿍 가져다 주셔서 아주 따듯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아주머니에게

마낭 이후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내려올 때 헬기소리를 얼핏 들었는데...

야크카르가로 구조를 하러 갔다고 했다

구조 대상은 독일커플과 미국인...

미국인은 못 찾았다고 한다....

 

마낭에 있었을 때...

커플이 있었는데.. 그들이 독일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거 같기도 하고..

 

아.. 올라올 때 보았던 그 독일 여자는 어떻게 됐을까..

무사하기를..

 

안타까우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리하지 않고 되돌아와서...

욕심내지 않아서...

내 선택이 좋았다고..

많은 아쉬움이 남아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 선택으로 인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다이닝룸에 걸린 사진들을 둘러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여긴 네팔인데...

포탈라 궁 사진이 몇몇 보였었다

그리고 티벳이란 글자도..

 

아주머니에게 여쭤보니 자신들은 티벳 사람이라고 했었다

여기 히말라야 산군은 네팔과 티벳의 경계라서 종종 이런 모습들이 보이곤 한다

 

아주머니에게 어제 따라가 얘기한 다른 코스에 대해 물어봤다

아주머니와 따라가 이것저것 얘기를 하더니 

아주머니가 말하길

아무래도 많이 알려진 길로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난 이때만 해도 다른 코스가

우리나라처럼 비법정코스이고 비탐을 가는 그런 길로 생각했었다

 

아직까지 이곳에서 걸은 길은 눈속의 임도길을 걸은게 전부라

다른 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어 난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애초 계획한 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단 둘이 남은 그 한국 친구와 이것저것 얘기를 하며

밤이 깊어지고 있었고..

그렇게 깊은 밤을 날아 잠이 들어갔다

 

 

난..

이 당시 네히트에서 읽은 글 때문인지..

뭔지 모를 우월함에서 오는 미안함 때문이지..

이들의 일상을 잘 찍지 않았다

사람들도... 생활 모습도..

그저 지나가면서 건물의 사진이나 종종 찍을 뿐이었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지난 기억들이 사라지면

알 수 없게 되는 기억들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렇게 상세히 글을 남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면서 다른 블로그들을 검색해 보면 그 장소를 찍은 다른 시선의 사진들을 볼 수가 있다

그러면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고..

다시 가보고 싶어진다

이번엔 더 잘할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생기고..

다시한번 겨울에 가고 싶다는...

그러면서..

아니.. 이번에도 완주를 못 할 수 있으니 다른 계절에 가라고...

하는 두 가지의 마음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

 

 

그런데...

다음 일정을 정리하려고 하니.. 

바로 생각이 정리되었다

역시 겨울이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