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라운딩 - 5일차

2019. 8. 26. 18:07해외 등산/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여행기간 : 2019년 2월 13일 ~ 27일 (14박 15일)

여행종류 : 해외 등산, 자유 여행

 

 

제 5일차 (2월 17일) 일요일

 

이동 경로

 

어퍼피상(Upper Pisanag) ~ 로우피상(Lower Pisang) ~뭉지(Mungji) ~ 브라가(Bhraka) ~ 마낭(Manang,  3,540M)

 

=> 애초 일정 : 브라가(3,450m) ~ 아이스레이크(Icelake) ~ 마낭(Manang) ~ 강가푸르나 ~ 마낭(Manang)

 

오전 6시 10분 기상

패딩을 입고 끓인 물병을 품고 잤음에도 몸에 열이 나지 않았다

영하 20도의 산속에서 텐트치고 잘 때도 다 벗고 잤었다

지금 몸 상태가 안 좋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처음 접한 환경의 산에서의 첫날 밤은 모두 몸이 좋지 않았구나

처음 혼자 간 외국의 산(일본 북알프스 - 오모테긴자)에서도

이곳 네팔의 안나푸르나에서도..

 

일어나니 또 반응이 와서 화장실로 가니...

설사...

물갈이가 맞다

젠장...

 

아.. 전날 숙소에서 생수 2리터와 핫워터 1리터를 구입했다

생수는 마시고..

핫워터는 품고 잤다

그리고.. 

여행 패키지 비용에 포함된 식사 때 차(거의 레몬이나 밀크티를 마셨다)가..

문제였던 것이다

여기서.. 물갈이를 한 것이다

 

일어나서 본 바깥의 날씨는 정말 화창했다

식사를 위해 다이닝룸으로 올라가서 사진을 찍기 위해 발코니로 나가 사진을 찍는다

여명이 비추고 있는 곳은 출루(Chulu)이다. 

지도를 보니 출루, 출루동봉/서봉/중앙봉 이렇게 4개의 봉우리가 있다 

어느 봉우리인지는 모르겠다

방향상으론 아마도 동봉(6558m)이지 않을까 싶다

 

여명은 눈부시게 하얀 눈을 금빛의 색으로 만들고 있었다

저 멀리 출루로 날아가는 새들..

무슨 새인지는 모르겠다

안나푸르나 2봉 정상부는 더욱 눈부신 금빛으로 덮여버렸다

(따라가 분명 2봉이라 했는데.. 지도를 보니 4봉 같다. 헷갈린다)

아침 햇살을 받은 눈이 더욱 눈부시게 느껴졌다

 

다이닝 룸 문으로 나오자 마자 정면에 보이는 봉우리다

발코니의 왼쪽으로 가면 정면으로 보이는 

안나푸르나 4봉

정상의 눈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이 모습은 다큐나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었다

이 모습을 직접 보게 되다니...

신기하고 황홀했다

정상에 쌓인 눈들이 아주 서서히.. 조금씩 바람에 실려 날아가고 있었다

살아있는 모습이었다

 

날씨가 너무도 좋다

구름 한점, 미세먼지 한톨 보이지 않는다

오직 푸른 하늘과 하얀 눈... 바람에 날리는 눈발...

 

밤새 소망했던 그 모습을 보여준 안나의 여신에게 감사를 드린다

08시 경 식사를 마치고 출발한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가장 빠른 식사시간이 7시경이었다

일본과는 다른 시스템..

 

로우피상으로 내려가서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자세한 설명(했어도 알아듣지는 못했겠지만)이 없었지만

가면서 건너편의 눈 덮힌 트레킹 길을 보면 이해가 갔었다

어퍼피상부터 이어지는 가류 ~ 나왈 코스는

1. 폭설로 인해 접근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고

2. 러셀로 길을 개척해야 하는 점

3. 급경사로 인한 추락의 위험성

등으로 평지길인 로우피상으로 안내한 것이다

 

이것이 이곳에서 가이드가 필요한 이유인 것이다

만약 내가 혼자 왔었다면

누군가에게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계획했었던 코스로만 갔을 것이다

말이 통해야 뭔가를 알 수가 있는데 그것이 안되니....

로우피상으로 내려가기 전 완전히 떠오른 아침 햇살 속에서 

내 가이드겸 포터인 따라

아.. 아직도 사진을 안 보내주고 있구나;;;;

5일차의 사진을 정리하는 이 순간도 이미 7개월이나 지나있는 시점이다

나의 게으름은 상상을 초월한다

핑계를 대자면... 늘 살림을 하느라 여유가 없다

이걸 정리하자면 정말 단 한시도 쉬지 않고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대체 왜 이리 되는 것인지...

 

면바지에 밑창이 떨어진 짝퉁 노스페이스 등산화를 신고 있는 따라..

배낭을 메는 방법도 모른다

그저 짊어질 뿐..

이러니 이들의 삶이 더욱 고단한 것일 것이다

조금이라도 그 고단함을 덜어주고 싶었다

내 잘난 척과 오만함이었겠지만...

어퍼피상에서 내려오면 강을 건너는 다리가 있다

이걸 건너면 로우피상이다 (뒤로 보이는 건물)

다리를 건너 뒤돌아서 바라본

눈 덮힌 어퍼피상과 이름도 없는 산들

저 곳의 수많은 롯지에... 

알 수는 없지만 손가락으로 셀 정도의 트레커들만이 있었던 것이다

마낭을 향해 간다

도시의 길은 내린 눈과 롯지에서 퍼낸 눈으로 인해

엄청난 높이의 쌓인 눈의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길이지만 길이 아니다

 

이곳에서 스누커 간판을 보게 될줄이야..

유럽애들이 많이 오는 모양이다

로우피상 마을 전경

이렇게 넓은 곳을 계곡이라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마을 끝에 있는 마니차

처마 밑의 바닥은 눈 녹은 물방울로 인해 녹아 있다

마을을 벗어났다

저~~ 멀리 갸루(Guyaru)가 보인다

산 비탈에 있는 마을..

어퍼피상에서 저기까지 산길로 가게 되면 현재 상황에서는 상당한 위험이 뒤따를 것이다

지금 이 길.. 로우피상으로 가길 잘했다

마을을 지나 첫번째 오르막 지점을 오르고 나서 뒤돌아 보니

푸른 하늘, 눈부시게 하얀 눈, 강렬한 햇살...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다

따라가 찍어 준 사진

저 스패츠는 산지 거진 10년 됐지만 거의 사용을 하지 않았었다

초창기에만 몇번 사용했을 뿐...

지금은 아주 훌륭하게 나를 보호해주고 있다

뒤로 보이는 이름모를 산

저 경사진 곳으로 스키를 탄다면.. 어찌 될까?

왼쪽의 이름 모를 산에선 눈발이 계속해서 날리고 있다

저 수직 절벽의 산...

이곳에선 아무도 찾지 않는 산이다

눈 덮힌 숲길을 지나간다

숲 길을 나오니 넓은 공간이 나오고 저 멀리 눈 밭에 앉아 있는 외국인 2명이 보인다

가까이 가 보니 어제 두크레 포카리에서 점심 때 만났던 미국인? 이었다

어제 거대한 치즈인지 햄인지를 잘라서 먹는..

장기 여행자였다

잠깐의 인사를 한 후 다시 계속 걸어간다

거대하게 쌓인 눈들..

쌓인 눈이 바람에 날리는... 눈발을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11:20분

훔데(Humde) 도착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번에도 따라가 안내해준 식당으로 갔는데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날씨가 이런 상황에서 문을 연 가게는 몇개 되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트레커들이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쉬고 있다

 

날씨가 너무나 좋다

고산이고 겨울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강한 햇살에는 배낭을 메고 있는 등이 젖게 된다

이 따스한 햇살에서 등을 말리면서 쉬고 있다

식당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진도 찍지 않은 것 같다

단층 건물이고 오른쪽에는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돌음계단이 있다

주변을 둘러보러 올라갔다

옥상은... 난간은 없이 그냥 평평하게만 되어 있다

1층의 계단 주변은 눈이 녹아 진흙밭이 되어 있었다

 

식사를 할 때 몇번 마주친 외국 여자(이곳에선 나도 외국인이다)를 또 보게 되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워낙 극소수의 트레커들만이 마낭을 향해 가고 있어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출발한다

이곳엔 공항이 있다

작은 경비행기만 올 수 있는 곳으로 알고 있고...

지금처럼 눈이 많이 올 때는 그냥 이름뿐인 곳으로.. 폐쇄이다

저 눈발들은 마치 겨울철 굴뚝의 연기를 떠올리게 한다

다시 훔데를 지나 걸어간다

양쪽 봉우리에서 눈발이 서로 만나 하늘로 올라간다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있지만

저 곳까지는 상당한 거리이다

지금 이곳에선 내가 알고 있는 거리감이 소용이 없어진다

온통 하얀 눈의 세상.. 

넓은 평지 아닌 평지와 거대한 산의 높이..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목 뒤로 강한 햇살이 비추고 있다

난 이미 토케이 자켓을 벗고 있었다

덮다

해발 3000미터 이상에서...

한 겨울에.. 이렇게 눈으로 가득한 날씨에..

덥다

고도가 높아 강한 태양이 걱정되어 창이 넓은 모자로 새로 구입해 왔는데

한가지 아쉬운 것은 목 뒤에 그늘막이 없다는 것이다

이날 가는 내내 등 뒤에서 햇살이 내리쬐었고

그 결과 내 목 뒤는 탓다...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혼자 온 한국인이 먼저 앞으로 나아간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나로 인해(내가 올라가니 갈 수 있겠다.. 또는 함께 가면 괜찮겠지..) 철수하지 않고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엄청나게 빠른 걸음으로..

저 멀리 뭉지(Mungi)가 보인다

해발 3200m

14:20분

아이스레이크로 갈 수 있는 갈림길

애초 내 일정에는 아이스레이크를 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폭설의 상황에선 갈 수가 없다

롯지는 모두 폐쇄

길은 러셀을 하면서 가야한다

어쩔 수 없다..

지금 여기선 계속해서 어쩔 수 없다

안나푸르나 3봉

왼쪽의 강 건너에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산들이 거의 보인다

강렬한 햇살 속에 흩날리는 눈발이 낯설기만 하다

이런 광경은 한국에선 오직 공장의 굴뚝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마낭 초입에 보이는 탑

분명 뭔가 이름이 있을텐데..

탑 이름을 찾기 위해 검색을 했었는데.. 찾진 못했다

안나푸르나를 다녀온지 9개월 가량 됐는데

내겐 네팔병이 없었었다

처음 1~2달 정도를 빼고는..

그러나 지금 검색에서 나온 사진들을 보니 그 병이 다시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고

오직 앞으로 걷는 것만 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더 갈 수 있는지.. 어디서 돌아와야 하는지..

무사히 가고 돌아올 수 있는지..

그것뿐이었다

 

지쳐 있던 내겐 그것이 자유이고 행복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곳에선 내가 갑 중의 갑..

이런 세속적인 마음도 네팔병을 생기게 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뒤돌아 보면 안나푸르나 4봉이 보인다

먼지 한톨 보이지 않는 푸른 하늘과 온통 하얀 눈으로 덮힌 산..

바람에 흩날리는 눈발..

이것만이 보인다

 

안나푸르나 봉우리의 이름은 높이에 따른 것이다

순서는 서쪽부터

안나푸르나 I봉(8,091m), 안나푸르나 II봉(7,937m), 안나푸르나 III봉(7,555m), 안나푸르나 IV봉(7,525m),

강가푸르나(7,455m), 틸리초(7,134m)

 

트레킹 코스 순서로는

2봉, 4봉, 3봉, 강가푸르나, 틸리초~~~ 

난.. 2봉~4봉, 강가푸르나만 볼 수 있었다

이번 여정을 출발하기 전부터 현지의 상황이 안좋은 것은 알고 있었다

그 안 좋음이 지금 이 순간..

엄청난 눈 속에 홀로 서 있음을 하게 하였다

뭔지 모를 외로움도 느꼈던 것 같다

브라가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출루(Chulu)산군이 보이기 시작한다

설명을 해주긴 했는데 기억이 나진 않는다

아마도 왼쪽부터 출루 서봉, 동봉, 출루일 것이다

브라가 마을은 거의 폐쇄가 되어 있었다

주변 지도를 보여주는 이정표

아이스 레이크를 가고 싶었는데...

어느 집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행동식을 먹으면서 셀카를 찍었다

행동식으로는 

닥터유 에너지바, 해바라기 초코렛, 일반 초코렛, 감말랭이 등

행동식 무게만 근 700g 가까이 됐었다

보름 일정 중 10일을 걸어야 하니 많이 챙기긴 했었다

 

절연 장갑이 보이는구나 ㅋㅋ

이왕 가져갈거 3M 거로 가져갈 걸..

다이소 거라니.. 쪽팔림..

쉬면서 오른쪽을 보니.. 

사람이 보였다(라고 생각했다)

순간 내가 저길로 왔나?

다른 길이 있었나?

따라에게 물어보니 뭐라뭐라 했는데 잘 모르겠고

사진을 확대보면 석탑? 같은 것과 깃발이다

뒤로는 안나푸르나 4봉이 보이고

정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구름이라 할 수 있는 건 실제로는 바람에 날린 눈발이다

눈발이 강한 햇살에 구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나의 무지는 이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오직 정상 위에만 구름이 존재한다

15시 40분

마낭 초입에 도착

앞서 출발했던 한국인이 어느 롯지에서 만나자고 했었는데

이번에 따라는 자기가 가고자 하는 숙소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난 왜 그 순간순간 나의 의견을 얘기하지 않고서 속으로만 불평을 해대고 있는 것인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열악한 곳에서 숙소를 따져봐야 어차피 열악한 환경이고

게다가 지금은 폭설로 인해 거의 대부분의 숙소들이 폐쇄를 한 상태에서 

무슨 선택권이 존재한단 말인가

그저 하룻밤 묵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저 숙소를 본 순간

신축건물인 줄 알았다

멀리서 보기엔 정말 깨끗하게 보였었다

 

숙소 앞으로 걸어가는 길에 야크 똥이 천지로 깔려 있었단 것이 좀 그렇긴 했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멀리서 본 것과는 다른 허름한.. 모습에 약간은 실망을 하고

위 사진에 보이는 3층 오른쪽 끝방을 배정 받았다

방안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함께 있는 그래도 시설은 괜찮아 보이는...

하지만.. 역시나 화장실이나 샤워실은 모두 얼어 있어 사용할 수가 없었다

3층의 바깥에 공용화장실이 있었지만 이 역시 얼어 있어

1층의 공용화장실을 사용해야만 했다


16시 16분

숙소에 짐을 풀고 난간에 나와서 찍은 안나푸르나 3봉

안나푸르나 4봉과 오른쪽 밑에 틸리초호텔

저기가 한국인들이 많이들 가는 곳이고

지금 이곳에 있는 유일한 한국인 2명 중 한명이 묵고 있는 곳이다

그 한국인이 여기서 묵자고 했는데 나는 다른 곳에 와 있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내가 묵은 숙소의 이름이 생각나질 않는다

(밑의 사진에서 안나푸르나 3봉까지의 거리를 재러 구글 지도를 보다가 숙소 이름을 찾았다 ㅋㅋ

Hotel Himalayan Singi)

찾고자 하면 맵스미를 통해서 찾을 수 있을 것이지만..

맵스미는 이미 삭제를 해버려서 없다

다시 설치할 그런 정성은 없다

마낭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왼쪽의 틸리초피크와 오른쪽의 출루(Chulu)가 보인다

이 사진은 숙소의 다이닝 룸으로 올라와서 찍은 것이다

이 곳이 햇살이 잘 들기도 하거니와 난로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난로도 5시인가? 6시인가? 부터 때준다고 하기에

따라를 시켜서 장작값을 지불할테니 당장 때게끔 해서 준비 중에 있다

 

하늘이 멋있었다

따스한 햇살도 좋았고..

노을로 바뀌기 전의 강렬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

지금 있는 곳의 고도는 약 3,540m이다

눈 앞의 안나푸르나 3봉은 7,550m이다

아무리 봐도 저 산이 7천미터급이 되어 보이질 않는다

저 산이 7천미터급이라면 나와의 거리가 수km 이상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지금 3봉까지의 거리를 알고 싶어 구글로 확인하니 지도상 직선거리가 약 9km로 나와 있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내가 느끼는 거리감은 고작 5km미만 정도였다

따라한테 봉우리의 이름을 확인할 때마다 높이에 대해 의문만 가득했었다

이 정도로 거리감이 없어져 버리는 곳이 이곳이다

틸리초 호텔을 자르고 산만 찍었다

틸리초피크를 당겨보았다

저건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었다

그리고 올라가 보고 싶었다

바로 눈 앞에(약 9km 전방이지만) 있는 안나푸르나 3봉보다도

더 멀리 있는 틸리초피크를 가고 싶은 것이다

아마도 애초 목적했던 곳 중 하나였던 틸리초 호수를 가지 못하게 되서 생긴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호수를 갔었으면 바로 눈 앞에서 피크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기 전부터 계속된 폭설로 인해 길은 끊겨버렸다

이곳 마낭에서 더 갈 수 있을지 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이닝룸에서 등산화를 말리면서

야크카레였나? 뭔가를 먹었다

맛있다고 하더니.. 개뿔.. 질기기만 하다

 

다이닝룸에는 나를 제외하고 3팀(?)이 있었다

여자 한명, 남녀 커플, 남녀 커플+남자 1명

 

그 중 한 남자가 내게 영어를 할 줄 아는냐고 물었다

난 짧은 영어로 베이비 수준이라고 했다

영어를 못한다고...

그랬더니 그눔의 쉐이 표정이..

마치 안됐다. 안쓰럽다 

뭐 그런 표정이었다

저걸... 죽여 살려..

 

어딜 가나 지들이 최고라는 저 서양놈들의 오만함을 어찌할고..

 

등산화가.... 너무 잘 젖는다

출발하기 전날 왁스를 듬뿍 발랐고

카투만두에서(공항이었나?) 오른쪽 등산화 바깥쪽이 히터에 말라 원색(황토색?)을 찾았었다

그 부분이 이번 트레킹에서 먼저 젖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어제 밤엔 난로에 너무 가까이 놔둬서 그런지 왼쪽 등산화도 말라버렸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등산화 발등이 커진거 같기도 하고 말랑말랑해진거 같기도 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실내(? 기억이 잘 안나네..)라 잘 보이진 않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이다

신기하게도 장작 난로 바로 앞에서 말리는 것인데도 몇 시간이나 걸려야만 완전히 마른다

신기하다...

 

등산화를 거의 말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밤하늘을 찍을 준비를 한다

옥상으로 올라가서...(옥상에 난간 그런건 없다)

 

안나푸르나 3봉 왼쪽으로.. 보름달이 떠 있다;;

(기억상으로는 3봉 부근이 은하수였었다)

난 외국 원정 산행만 가면 보름달(또는 그 부근)이구나..

밝은 달 아래 바라보는 안나푸르나의 산군들은 낮에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태양 빛이 사라져 산의 굴곡(?)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안나푸르나 3봉을 찍고 나서 옆으로 가 출리와 틸리초피크를 담아본다

달이 조금만 더 기울었다면 더욱 많은 별을 볼 수 있었겠지만

티 없이 맑은 하늘 아래서 별을 볼 수 있음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었다

높은 고도에도 그리(생각보다는) 춥진 않았지만..

사진을 찍으며, 별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내일을 위해 숙소로 돌아갔다

다이닝 룸에서도 따라와 내일 일정을 계속해서 확인했다

그리고 여행사 가이드 팀장과도 가끔씩 터지는 인터넷으로 통화도 하며 

내일의 상황을 알아보았다

 

현재 모두들 철수를 했고 몇 명 정도만이 야크카르카에서 머물며 대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곳에 수십명의 트레커가 있어 하루이틀 머물며 상황을 보고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길을 개척할 수는 있다고 하지만

너무 위험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그곳엔 극소수의 인원들만이 있다

어차피 그 인원들로는 러셀로 개척을 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너무도 무거웠다

몇 년간의 후회 속에서...겨우 어찌 시간이 되서 부랴부랴 이 곳에 왔건만...

이건 마치 호도협의 재현이 아닌가..

그때도 빵차의 늦은 출발, 차막힘, 케이블카이 기다림, 일행의 늦음으로 인해 목적한 곳까지 가지 못했다

 

지금도 자연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극복할 수 없는 그 무언가로 인해 

난 이리도 많은 고민을 하고 심란하고 안타깝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음에도...

사람은 그럼에도 후회를 하는 것이다

나약함이 그렇게 만든다

 

하루를 더 가면 하루를 더 돌아와야 한다

하루를 더 가서 문제가 생기면 그 하루가 며칠이 될 수도 있다

귀국은 정해져 있고

전날까지만 포카라에 도착하면 어떻해든 그 다음날 출국은 할 수가 있다

 

그 하루... 그 하루가 문제였다

 

따라는 마낭에서 야크카르카까지는 모든 숙소가 문을 닫았다고 했다

야크카르카에도 몇개의 숙소만 영업을 하고 있는 중이고

야크카르카까지는 약 8시간 정도의 거리

 

조금이라도 날씨가 않좋거나 하면 더 지체가 될 수 있는 거리이다

 

난...

그 하루를 더 가고 싶었다

그 하루만 더 가면.. 좀 더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지금보다는 조금..

 

그리고 그 하루를 더 걸어서 날 힘들게 하고 싶었다

언제나 힘듬은 나의 몫이니 난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니..

 

결국 난 하루를 더 걷기로 했다

뒤의 일정 중 포카라에서의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오직 걷는데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하늘의 뜻에 따라.. 운이 좋아..

날이 좋아지고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더 걸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난 사람이니...

나약하니.....

그런 기대에 의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