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알프스 우라긴자 종주 - 2일차

2019. 2. 5. 00:26해외 등산/일본 북알프스 - 우라긴자

여행기간 : 2018년 9월 22일 ~ 26일 (4박 5일)

여행종류 : 해외 등산, 자유 여행

제 2일차 (9월 23일) 일요일

 

이동 경로

 

나나쿠라 산장(七倉山莊) - 다카세댐(高瀬ダム1270m) - 삼각점 (三角点) - 에보시고야(烏帽子小屋 2551m) - 에보시다케(烏帽子岳 2628m) - 에보시고야(烏帽子小屋 2551m) - 밋츠다케(三ッ岳 2845m) - 노구치고로고야(野口五郎小屋)

04시 40분 기상

 

드디어 오늘부터 산행의 시작이다

말로만 듣던 우라긴자를 보기 위해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일어나서 씻고 짐을 정리하고

1층으로 내려가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식당안에는 기념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뱃지를 하나 사고

가져간 북알프스 - 야리가다케 지도에

커다란...

아주 커다란 스탬프를 찍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담엔 손수건 같은 걸 준비해서 거기에 찍을거다

음식 사진은 찍진 않지만..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요플레!!!!!!

 

뚜껑에 단 한점 묻어있지 않다!!!

이럴수가

요플레 먹는 순서는

뚜껑을 딴 후에 뚜껑을 핥아야 하는 건데..

여기는..

이것은 무엇인지....

유통과정에서조차 흔들림이 없단 말인가!!

05:54분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하고

 

숙소에서 예약해 준 택시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온다

날씨가 좋다

지난 밤 머물렀던 나나쿠라 산장

가운데 두건 쓴 사람이 매니져? 이다

산장 왼쪽... 옆에도 숙소가 있었던 모양이다

산장 오른쪽.. 길 따라 가면 들머리인 다카세 댐이 나온다

매니져에게 부탁해서 사진 한장 찍고..

장기 산행을 갈때는 항상 등산화에 왁스를 먹인다

덕분에...내 등산화는 본래의 색을 잃어버리고 딴 놈이 되어 버렸다

거의 1년내내...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 쪼그마한 택시에 4명이 합승하여 들머리까지 올라간다

등산객 총 8명

지그재그로 댐을 올라가서 도착

숙소에서 약 18분 거리

사전에 알아본 바로는 택시요금은 2200엔

기사분께선 2000엔만 받으셨다

기사분이 내게 500엔만 달라고 하시더라

1000엔 주니 500엔 거슬러 주셨다

 

이곳에 올라오니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고도가 높아진건지..

댐이 있어 그런건지

 

서둘러 운행자켓을 입고서 준비 운동을 한다

 

같이 온 일본분들은 옷을 입고 바로 출발을 하고..

난 주변 사진을 좀 찍고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산 어딘가가 내가 가야할 곳이다

댐 뒤쪽 저 계곡 어딘가에 나나쿠라 산장이 있을 것이다

댐 우측의 터널로 통과하여 시작점부터 10분 정도 걸어가면 등산로 초입이 나온다

이런 다리..

다리의 자재가...나무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보는 합성목재가 아닌...

그 오래전에 많이 보던 방부액에 담궈둔 나무

그것도 한지 얼마 안됐나 보다..

끈적하다

 

하긴 사전조사에선 이 다리가 무너진 적도 있다고 했었으니까

중간쯤 가서 오른쪽에 중장비들..

하천 정비하나보다

왼쪽으론 저수지

내가 읽을 수 있는 건

노구치고로고야(野口五郎小屋)

이용요금은 1인 1박 500엔

큰비나 토석유실이나...어쩌고...저쩌고..

금지

이해했음!!

비상대피소!!

쓰러진 나무 중간을 잘라 통행을 가능하게..

전에 어디서 본거 같은데...

등산로 관리는 산장에서 한다고

 

야리가다케 산장 홈페이지에 보면 등산로 보수공사하는 사진이 종종 올라오곤 한다

블로그에서.. 

이 다리도 유실됐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다행이다

근데.. 정말 어딘가 불안하다

오른쪽의 산에선 계속해서 물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다

이제 본격 등산의 시작이다

뒤돌아서 한장

햇살이 정말 좋다

 

오늘의 산행을 한껏 기대하게 한다

몇 분 오르지 않아서 보게 된 믿을 수 없는 광경

아시바;;;

이건 대체...

 

게다가 그냥 나무 판때기..

이건 완벽한 공사장이다!!

 

정말 우리는...

럭셔리한 산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30여분 정도는 정비 안된 마등령을 올라가는 느낌이다

경사도 급하고 안전장치도 미흡하고..

07:18분

10합목

일본은 거리나 시간의 개념보다는

 

합목의 개념을 많이 쓰는 거 같다

이 지점부터 목적지까지 10등분하여 각각 1합목씩 계산한다

숫자가 줄어들수록 목적지에 가까워진다

당연하게도..

07:30분

9합목

 

에보시다케, 노구치고로

07:46분

8합목

07:57분

7합목

08:30분

6합목

좀 쉬다 출발할 때

경사가 급한 편이라 쉬엄쉬엄 걷고 있다

간식도 먹어가며

급할 거 뭐 있나

어차피 오늘 중으로 도착할텐데..

저~~ 멀리 보이는 저 산은 어디일까?...

 

란 생각이 산행 내내 들었다

산행하는 내내 보이는 좌측의 산이다

사람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걸 알 수 있다

09:10분

밴드 생존신고용으로 찍은 셀카

내 피부가..

내가 아니게 하는 마법의 핸드폰이다

09:20분

이놈의 삼각점이 언제 나오나 했다

 

지도상으론 댐부터 여기까지 4시간인데 1시간 정도 빨리 왔다

문득..

 

엄지를 찍고 싶었다

그리고 무려 5장을 찍었다

뭘 찍고자 한 것인지

점점 능선과 눈 높이가 비슷해지고 있다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에보시고야에 다 와가나 보다

09:59분

2합목

10:30분

1합목

10합목은... 거리기준인가보다

 

중간 중간 내가 쉬는 시간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들쑥날쑥이다

시야가 트인다

10:47분

드디어 도착한 에보시고야

배고프다

날씨 좋다

저 멀리.. 저기가 가야할 곳이겠지

아...12합목으로 구분했구나

 

11은 못 봤는데..

일부러 이거 보일 때마다 다 찍어놓은건데..

이런...

먼저 도착하신 분들

작은 산장이다

여기저기 덧댄 흔적들

 

바람에 날라가지 말라고 돌을 올려놓고

기름인지 드럼통들..

내가 가야할 곳은 오른쪽

 

배낭만 내려놓고 왼쪽의 에보시다케로 간 사람이 몇명 있다

나도 배낭을 내려놓고 몇개의 소지품을 크로스백에 챙겨서 에보시다케로 향한다

근데.. 배고프다..

해발 2,520m

 

들머리 다카세 댐 1,270m

고도차 1,250m 약 4시간 30분 산행

지도상으론 약 5시간 20분 소요

 

예상 도착 시간은 11시 40분

현재 시간 10시 49분

여전히 시간적 여유가 있다

산장 정면에 보이는 산들

 

아마도 아카시우다케(赤牛岳) 일 것이다

에보시다케로 가고 있다

저 봉우리 너머에 있다

 오른쪽을 돌아보면..

모두 내 발아래..

저긴 어딜까..

분명 츠바쿠로다케(오모테긴자) 같기도 하면서도 아닌거 같기도 하고..

전체 지도가... 가방에 있다

 

바지엔 당일 산행의 분할된 지도만 있다

셀카

등산용 고글이 나한테 안 어울린다고..

친구 녀석한테 하도 욕 처먹고

제주도 워크샵 갔을 때 산 선그리

루디프로젝트 스핀호크 매트블랙

 

색이 약 4가지(이상?)가 들어가 있다

빨강, 파랑, 검정, 녹색도 보인다

 

근데...

앤... 패션 선그리다;;;

난 방풍기능이 강화된 선그리를 갖고 싶다고!!

뒤돌아 보면..

오늘 내가 가야할 길들이 보인다

언제 가나..

에보시다케 가기 전 봉우리에서..

돌탑은.. 어딜 가나 있다

왼쪽 뾰족한 것이 에보시다케

오른쪽 에보시고야

왼쪽 미나미사와(南沢岳)

난 에보시다케 이후(북쪽)으로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이정표를 첨 본 순간 당황했다

당연하게도 내가 본 38번 야리가다케 지도엔...

에보시다케까지만 나와 있어 그런것 같다

 

그저 막연히... 저기로 계속가면 시로우마다케가 나오겠지..

란 생각뿐이었다

삼거리

1km나 왔구나

480m 남았다

믿지는 않는다

멀리서 보이던 바위 안으로 들어오니 낙석주의란다

여기서부터가 바위타고 가야한다

관악산의 그 무슨 바위냐..

뭐 그런거다 

정상목이다

북알프스에선 정상목만 보고 있는 것 같다

정상석은..

음... 기억 속에 없다

 

우리나라처럼 지자체 별로 경쟁하듯 하는 그런 거대한 돌덩이들은 없다

그 높은 곳까지 올려서 그렇게 자랑들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

얼마나 대단한 산들이라고..

그냥 평범한 산들 아닌가..

 

암튼..

한 2m 정도 벽타고 기어올라간다

올라와서 바위사이로 보이는 곳은 츠루기다케와 다테야마

(북알프스 지도 37번)

정상목

오랜 세월이 지났구나..

왼쪽과 오른쪽이 하늘이 다르다

저 멀리.. 어딘가가 시로우마다케라고 생각해본다

내가 걸어온 길

왼쪽 뒤편의 능선은 분명 츠바쿠로다케일 것이다..

라고 추측해본다

산장으로 돌와 와서 아까 배낭 놓여져 있던 곳에

철퍼덕 주저 앉아

나나쿠라 산장에서 사온 도시락을 먹었다

 

김밥!! 그리고 이상한.. 손톱만한 짠지 2개

맛은... 그냥.. 짠맛?

아무리 생각해도..

불쌍하다

이런 식문화라니

 

다양한 음식들이 존재하는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환경에 적응하고 환경을 극복하려 노력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의 음식들..

아주 적은 양의 반찬과 간단한 식문화

검소한 것으로만 생각되진 않는다

 

그들은 그저 그 환경에 순응한 것일 뿐이다

거기에 만족하고 그 이상을 보진 못한 것이다

 

가업승계가 많은 민족..

수백년씩 이어온 가업들..

 

장단점이 있겠지만 난 그리 생각한다

 

13:34분

에보시고야에서 뱃지와 음료수 하나 사고

빗물을 보충하고 슬슬 출발할 준비를 한다

 

여기서.. 1시간 가량을 쉬었다

'이제서야 예정된 일정과 맞게 되었다' 는 여유를 부리며 출발한다

산장 바로 근처의 연못

연못 우측에 야영장이 있다

사진은 없지만 몇몇 사람들이 이미 야영 중이다

야생화

뒤돌아 본다

멀리도 왔구나

내가 가야할 길..

오늘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언제나 그렇듯...

한발 한발 걷다보면 도착할 것이다

다만 그 한발의 무게를 내가 이겨낼 수 있을지

그것만이 걱정일 뿐이다

뒤돌아 보면 하늘이 다르다

저 멀리 보이는 곳으로...

난 다시 올 것이다

출발한지 1시간이 채 안되었다

이곳으로 올라오면서 우측의 너른 능선으로 누군가가 뛰어오는게 보였었다

난 정말 내 눈을 의심했다

"뛰어와?"

"여길?"

우측의 에보시다케에서 이 기점까진 오르막이다

20분 정도 올라가면서도 뒤를 종종 돌아봤다

내가 잘못 본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러나 그 검은 물체는 점점 나와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난 여기서 그를 기다렸다

바람이 불어 약간 밑으로 내려가 쉬면서 자켓을 입었다

 

그는 정말로 에보시고야 이전부터 뛰어왔고

트레일러너라고 한다

엄청나다

난... 불가능할 듯하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그런지 성의가 부족했던건지

초점이... 다리에 맞춰진거 같다

그에게 부탁하여 나도 한장 찍는다

내가 걸어온 길을 뒤로 하고...

 

짤린 다리..

다음에 찍을 땐..

'풋 노 컷' 이라고 해야겠다

그는 다시 뛰어서 내려가고

나는 앞으로 걸어간다

 

각자의 삶이 이리 다르다

누군가는 뛰고

누군가는 걷고...

다시 뒤돌아 본다

산행은 내가 걸어온 길과 가야할 길..

이 모두를 묵묵히 걷고 견뎌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걷는 것이다

그곳에서 내가 왔으므로..

그곳을 떠날수는 없으니까..

나는 다시 걷는다

그 원초적인 목적을 위해서...

15:07분

밋츠다케(三ッ岳 2845m)

예정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3분 차이..

여긴 올라가진 못한다

이제 두어시간만 가면 오늘의 목적지가 나온다

날씨는 점점 흐려져가고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한다

위 언덕을 내려와서 다시 뒤를 돌아보고

앞도 바라본다

드디어 야리가다케가 보이기 시작한다

북알프스의 맹주라고 할 수 있는...

삼각봉 야리가다케

 

이번에 저길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작년의 산행에서도 난 너무도 지쳐있어 올라가진 않았다

정상 인증은 내겐 큰 의미는 없으니까..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이 중요하고그 순간의 사진이 남겨져 있으면 됐다

반드시 정상에 가서 사진을 찍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엔 단지...

4박 5일간의 산행이 아니라

2박 3일간의 산행이 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지나온 길

문득..

핸드폰으로 찍으면 어떻게 나올까? 가 궁금했다

그리고 찍어봤다

이건 카메라...

핸드폰은 16:9 비율

카메라는 4:3 비율

이렇게 보니..

폰이 명암차가 크다. 그리고 뭔지 부자연스럽다

카메라는...이거 초점 날라간 건가?

이곳에서 사진 찍으면서 잠시 머물렀다

이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이 순간이 좋아서...

다음 목표를 상상하며..

문득..

사진을 찍고 싶었다

내 사진을..

삼각대를 세워놓고 카메라를 결속하고..

아.. 젠장...

리모컨 안가져왔다;;;

타이머로 찍었다

초점 날라간 것도 많지만 그래도 몇장은 건졌다

날 찍고 있는 카메라

평소 가지고 다니던 삼각대가 무거워서 작은 걸로 샀는데...

너무 작다;;;

내 스틱..

주인 잘못 만나 너도 고생이 많다

이제 2년 썻는데.. 5년은 쓴 듯하다

봄, 여름에는 곳곳에 야생화 군락지가 있다

하지만 난 늘 추석때만 와서 야생화는 사실 거의 못보고 다닌다

식생은 그 시기가 좋을 지는 모르지만 날씨는 지금이 좋은 것 같다

봄, 여름에는 많은 비가 자주 내리기 때문이다

15:53분

이 때쯤부터 하늘이 점점 흐려지고 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한다

비는 오지 않기를 바래본다

 

아직 더 가야하고 이리 보면 위험해 보이는 이 길을..

나 혼자서 걷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이 산 전체에 나만 혼자 있는 것 같았다

에보시고야 이후로는 아까 그 사람밖에 보질 못했다

사방천지를 둘러봐도 나 혼자였다

 

'저 멀리 보이는 언덕만 넘으면..노구치고로고야가 나오겠지?'

라고 생각을 해본다

 

바람이 많이 부니 후드를 뒤집어쓰고 고개를 돌리며 걷고 있다

 

새로 산 선그리는 패션용이라 바람이 숭숭 다 들어온다

게다가 변색이 아니고 편광이라 날이 흐려지자

실제 시야는 더욱 어두워만 보인다

선그리를 벗어야 하나 고민한다

벗으면 바람때문에 눈 뜨기 힘들고 먼지 등의 위험도 있고..

잘못 샀다고 생각했다

아.. 그 놈의 녀석 때문에 순간 흔들린 내 자신을 탓한다

 

'돌아가면 고글 쓰고 다녀야지'

이 고글도 유럽 두상에 맞춰진거라 단점이 있어 문제긴 하지만...

'다른 고글 찾아보자'

라고 다짐도 한다

 

이 무렵부터 오른쪽 발목이 약간 이상함을 느끼고 있다

속으로 한없이 그놈의 축구 축구 타령을 해댄다

왜 그걸 강제로 시키는 건지

덕분에 난 부상을 얻었고(물론 나만 그런건 아니지만)

가슴을 졸이며 이 날을 준비했고

이렇게 걷고 있는 것이다

제발... 무사하기를....

멀리서 보이던 언덕이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다

이곳의 흙은 오모테긴자와는 다르다

하얀색?.. 토질은 뭔지 모른다

정말 잘게 부셔지는 흙? 돌? 그런거다

우리나라에선 본 적이 없는..

16:22분

멀리서 보이던 그 언덕배기가 눈 앞에 보인다

건너편에서 사람이 오고 있다

아.. 두번째 본 사람이다 ^^

 

저 사람은 이 시간에 와서 언제 에보시고야까지 간다는 거지?

난 여기까지 약 3시간 걸려서 왔다

물론 일본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빠르게 산을 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아무리 빨라도 2시간은 걸릴 것이다

해는 1시간 이내에 질 것인데.. 이런 길을 야간에 걷는다고?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된다

 

그리고 괜히 말하고 싶어졌다

노구치고로고야까지 얼마나 걸리냐 물어보니

50분 정도라고 했던거 같다..(기억이 가물가물..)

북알프스에서 가장 많이 보는 식물

하지만 난..

많이 지쳐 있었다

생각보다 길었고

생각보다 발목이 신경쓰였고

생각보다 외로웠다

그래서 더 지쳐 가고 있었다

 

구글 지도를 계속해서 봤다

산장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현재 내 위치가 어디쯤인지 알기 위해..

하지만.. 잘 잡히지 않는다

 

무용지물..

그나마...

이 작은 핸드폰 안의 지도가..

내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해준다

왠지 모를... 약간의 안도감..

그런 기분도 들었던 거 같다

 

이 산 속에 오직 나만이 존재한다

에보시고야 이후 3시간이 지났지만

단 2명을 봤을 뿐이다

일본인들조차 오지 않는 곳

그곳에 내가 있다

알고 있었다

여긴 마이너코스란 것을...

 

내가 무엇을 놓친 것일까

다 알고 있었다

코스가 길다는 것도..

일본인들도 잘 오지 않는 곳이란 것을..

내 발목이 온전치 않다는 것도

준비가 부족했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왜...

힘든 것일까..

 

걷는다

한발 한발..

 

저 언덕만 넘어가면

나올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힘내라

언덕을 넘었음에도 길은 계속 이어졌다

더욱 지쳐갈 무렵 이정표가 보였다

400m

물론 믿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산행에서

단 한번도... 이 거리가 맞은 적은 없었기 때문에..

뒤돌아본다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너무도 멀리 온 것이다

내 발밑에 구름과

내 머리위의 구름..

오모테긴자보단 길은 편하다

여긴 정말 능선만이 있다

황량한 능선

흙이.. 하얀색이라 더 그렇다

 

속으로 생각한다

저 언덕만 넘으면 나올 거라고..

안 나오면 미쳐버린다고...

 

계속 생각했다

왜 이리 힘든거지?

왜 시간이 맞지 않는거지?

분명.. 에보시고야에선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예정 시간과 거의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다

 

등산 지도의 각 기점별 예상 시간에서 +10~20분 정도를 더해서 일정을 계획했다

전체적으로 60~90분 정도의 시간적 여유를...

 

점심을 너무 오래 먹은 것인가?

체력이 떨어진 것인가?

아니면 행동식의 문제가 있는 것인가?

뭔가 영양학적으로 체력회복이 안되는 것인가?

정말 많은 생각들을 했다

 

그저 알 수 있는 건..

식사 시간을 명확하게 계획하지 않았다는 것뿐...

16:58분

드디어 보인다

노구치고로고야

예정 시간보다 10분 늦었다

 

힘들었다

그래도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다

산행의 진리!!

걷다보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발목은.. 괜찮은거 같았다

느낌적인 이상함..

자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내 몸을 믿어본다

황량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냥 봐도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란 걸 알 수 있다

돌담을 만들어 놨고

많은 곳에 돌을 올려 놓았다

아..정말 영어든 일본어든 공부를 하던가 해야지

불편해서..

하지만 난!!

의지박약아

공부는 개뿔..

 

아주 힘들게 숙박, 2식, 도시락,

음료수, 과일 주스를 각 1개씩 사고

뱃지를 사고

비용을 결제하고

음료수, 과일 주스를 벌컥벌컥 마신다

 

그런데 갑자기 왠 아주머니가

'한국분이세요?' 한다

우왕.. 너무도 반가운 한국말..

'한국분이세요? 하니

아니란다ㅜㅜ

한국 드라마 좋아한다고..

 

그렇다!!

이곳에서도 한국인은 오직 나 하나뿐인 것이다!!

 

산장안에 들어선 순간 놀랬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략 30여명 정도..

다들 어디서 온 사람들이란 말인가?

 

에보시고야부터 내 앞엔 단 한명도 없었다

내가 에보시다케를 간 사이에 온 사람들이란 말인가?

그곳에서도 10여명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 중 나나쿠라 산장에서 같이 출발했던 몇명만 있다

그럼 모두들 스고로쿠다케나 쿠로베고로다케 쪽에서 온 사람들이란 말인가?

 

뭐가뭔지 모르겠다

혼란스러웠다

 

대략 숙소 안내를 받고

바깥에 나와서 옷을 털고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입었던 옷은 건조실에서 말린다

식당에서 단체로 식사를 하고

건조실에 들어가서 몸을 좀 덥힌다

의자에 누워 인공눈물을 계속해서 넣었다

잘 챙겨왔다

 

바람이 너무도 강하고 찼었다

 

몸에 온기가 좀 돌기 시작할 무렵

별을 찍기 위해 바깥으로 나간다

 

이번에도 별이 많다

그리고..

이번에도 거의 보름달이다

추석에만 올 수 있는 북알프스

당연히 보름달이지

그럼에도 별은 많다

난..

사진 기술이 없다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출사를 가지도 않는다

그럴 정성이 없다

사진은 오직 여행이나 산에서만 찍는다

사진을 목적으로 어딜 간 적은 없다

그래서 사진이 늘질 않는다..

장비만 좋으면 뭐하는가..

작은 산장이라.. 내무반이라 해야하나

단어가 생각나질 않는다

뭐.. 그런 2층 침상에서 잠든다

이번엔...

무사히...

잠들 수 있기를 바라며...

 

하지만.. 잠든지 두어시간만에 호흡이 부족해서 깨버렸다

아.. 젠장

고산증인가?

왜 산행 중엔 멀쩡하더니 잘라고 하니까 이러지?

하며...

약을 먹는다

그리곤 잠든다

나아지길 바라며..

 

 

노구치고로고야

부모님과 아들이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산장들이 가족 경영이라고 어디서 본 것 같다

부모님은 환갑이 이미 지나신 것 같았다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가업..

능력..

현재..

만족..

행복...

 

나는 알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들만의 세상이니..

 

이 숙소를 잡기 위해서도 엄청 고생했다

그 동안의 난 홈페이지를 통해 이메일 상담이란 고정관념에 묶여 있었다

그래서 모든 산장의 홈페이지를 찾으려 했었다

 

홈페이지가 없는 경우엔..

정말 힘들었다

몇날 며칠을 찾았는지 모르겠다

 

웃긴건...

어디엔가 페이스북 주소는 있었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주소가 있다는 건...

그들과 채팅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난 그걸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렇지

한치 앞을 생각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