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알프스 오모테긴자 종주 - 3일차

2018. 5. 30. 02:00해외 등산/일본 북알프스 - 오모테긴자

여행기간 : 2017년 10월 3일 ~ 8일 (5박 6일)

여행종류 : 해외 등산, 자유 여행

 

제 3일차 (10월 5일) 목요일

 

이동 경로

 

오오텐쇼흇테 - 우시쿠비 텐보오다이(전망대 牛首展望臺 2766m 왕복) - 빗쿠리타이라(ビックリ平 2549m) - 아카이와다케(赤岩岳,2768m) - 흇테 니시다케(ヒュッテ西岳 2,680m) - 미나마토노리코시 - 흇테 오오야리(ヒュッテ大槍 2,884m) - 야리가다케 산소오(槍ヶ岳山莊 3,086m)  (산행 거리 약 8km, 소요 시간 8시간 50분)

 

오늘은...5월 31일 새벽..

이거 정리하는게 왜 이리도 오래 걸리는 것인지..

퇴근 후 이것저것 하다 보면 막상 이건 손을 못 대고 있다.

문제는...기억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이다ㅡㅡ;;

 

밤새 죽음의 공포로 인해 잠을 자도 잔것 같지가 않았다

잠자리가 바뀌면 자주 깨는 습관도 마찬가지

 

그래도 다행인건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의 효과인지 시간에 따른 자연스런 적응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정도 잠을 잘수 있었고 어느 정도는 몸도 회복이 된 거 같다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일본의 산행은

새벽 4시 기상

오후 5시 이전 산장 도착

저녁 8시 취침

이다

 

새벽 4시가 되니 산장의 모든 전등이 켜지고

나도 그에 맞춰 일어난다

 

여벌로 가져간 옷을 잠옷으로 사용했었고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이른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간단한 식사..

특이한 것은 전기밥솥을 하나씩 준다는 것

그 안엔 2~3공기 정도의 밥이 담겨 있고

먹을 만큼 덜어서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전날까지 계속된 구토와 간밤의 고산증(?)으로 인해 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당연히 입맛도 없었고..

그래도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

 

다행히도 살아 있으므로 가고자 하던 길을 가야하기 때문이다

챙겨간 볶음 고추장에 억지로.. 정말 억지로.. 반 공기 정도 먹었다

 

난 서둘러 준비를 하지만 다른 일본인들은 여유가 있다

 

난 역시 꾸물거리는 것인가?

끊임없이 움직였음에도 기상 후 출발까지 2시간이 걸렸다..

 

잠깐의 고민을 했었다

나카후사로 돌아갈 것인가?

목적지인 야리가다케로 갈 것인가?

 

그렇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살아 있으니!!

어느 정도는 회복이 된거 같으니!!

 

고~~~~

 

난 야리가다케로 간다!!

 

06시 16분 산행 시작

 

이정표

야리가다케는 분명 왼쪽!!

산장 앞 너른 곳에서 본 북알프스 산군

아침 햇살이 한없이 포근하다

밤새 많은 일을 겪었던 산장

이제 며칠 뒤면 기나긴 동면에 들어가겠지

저 지붕까지 눈이 덮이고..

그 무엇의 발길도 닿지 않을..

 

산장을 뒤로 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시작부터 올라간다

올라가는 중에 본..

이것은 서리다!!

분명 서리 말고 다른 이름이 있을 것이다

서리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은 10월 초임에도 이곳은 이제 겨울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잠시 옆을 돌아본다

어제 저길(왼쪽)을 걸어왔구나

오른쪽의 길은 다이텐쇼우에서 오는 길

저~~ 멀리 츠바쿠로다케가 보인다

어젠 정말 힘들었지

아니 그제 오후부터..

계속된 구토로 탈진 상태에서도 여기까지 왔구나

체력이 좋은 것인지

긴장으로 버티고 있는 것인지..

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

그렇게 20여분을 올라갔다

정상? (우시쿠비 텐보오다이)

어라?

야리가다케로 가는 길에 정상은 없었는데?

뭔가가 이상하다

 

이 주변에서 길을 찾기 위해 10여분을 헤맸다

길이 아닌 곳으로도 가보았다

여길 뚫고 가면 길이 있나?

근데...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

뭔가 이상하다?

이상한건 이상한거고

일단 사진을 찍는다

기가 막힌 산군

우리나라는 완만한 능선과 정상의 연속된 산군

이곳은 깊은 계곡과 날카롭게 솟아난 정상들의 산군이다

험난한 곳임에도

뭔지는 모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등산의 여러 중요한 기술 중 하나!! 라 생각되는 것은

"아니다" 싶을 땐 과감하게 돌아서라!!

뭔가가 이상하여 난 다시 내려오기 시작했다

산장으로 가서 길을 물어보기로...

이미 정상까지 20여분

헤매는데 10여분

하산까지 10여분..

약 50분 이상을 허비했다

하산해서 다시 잘 살펴보니...

첫 사진의 이정표에 왼쪽 방향이 야리가다케임에도

난!! 그냥 뒤로 올라간 것이다ㅡㅡ;;

이 멍청함을 어찌할까...

 

지도와 일정을 다시 보니 이곳은 애초 일정에 포함되어 있었던

우시쿠비 텐보오다이(전망대)였던 것이다

아직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은 것인가 보다

그렇지만 우연히도 계획했던 곳을 가게 된 것이니

아직 행운은 남아 있는 것인가?

 

다시 방향을 잡고 이동한다

 

07시 10분

이곳도 등산로 주변은 산죽이다

 

지난 여름..

한라산에서 조리대(산죽)에 대한 얘기를 들은 이후 난 산죽이 싫어졌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많은 산들에 퍼져 있는 산죽을 볼 때마다 아픔을 느꼈다

 

여기 일본도 그 산죽이 이렇게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라?

근데 반대 방향에서 사람들이 오고 있다?

뭐지 뭐지?

니시다케까지는 약 3시간 거리인데..

벌써 오고 있다는 건..

그들은 4시경에 이미 출발을 했단 말인가?

이해가 되면서도 납득하기 어려웠던 순간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하산할 때까지 매 아침에 보게 되며 그때마다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07시 34분

빗쿠리타이라

'평' 이 들어가면 넓은 평지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사방이 잘 보인다

 

등산로가 살짝 두갈래이다

난 우측의 밑에서 올라와 잠시 쉬며 행동식을 먹고 있었다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한 나..

행동식으로만 견디고 있는 것이다

근데..잠시 뒤 산장에서 나보다 늦게 출발한 일본인들이 

사진의 위의 길에서 오더니 휙~~ 지나가 버린다

당황한..난..

'언제 벌써 왔지?'

그건 그거고..

파노라마 사진 한장

우측 대각선을 보면..

삼각봉

북알프스의 상징

야리가다케가 보인다

 

내가 가야할 곳이 저곳이다

어마어마하다

저 계곡에 보이는 하얀 것은 만년설인가?

저 곳은 어떻게 가는거지?

길은 어디인거지?

온갖 질문을 한다

하지만 답은 없으면서도 알고는 있다

앞으로 한걸음 한걸음씩 걷고 또 걸으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어떻게 내 발자취를 뒤로하고 이곳에 서 있는 것인지...

가야할 길

저~~ 능선 뒤를 지나 우측 어딘가로 가면 야리가다케에 닿을 것이다

내 뒤로는 내가 걸어온 시간들..흔적들..

'난 이렇게 조금씩..힘들게 여기에 와 있구나'

'내 남은 시간들도 그러하겠지..'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이런 산군에 올 수 있게 해준 거칠부에게 감사를..

 

지금 이 순간..

난 저 안에서 혼자서..

또 다시 그 힘듦을 겪고 싶다

인생은 언제나 힘든 것..

쉽다면 무슨 재미요..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힘든 것은 힘든 것이다

세월이 지난 후..

그저 덤덤해져서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길 수 있는 것일 뿐

세월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그 힘듦에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헬기가 보인다

처음엔 구조? 인가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물품수송이란걸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정상 부근으로 가질 않는다?

야리가다케 산장이 어디길래.. 어디로 가는걸까?

어제 점심 무렵부터 맑은 날이 계속되고 있다

바람도 불지 않고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

복 받았다!!

08시 32분

산행 개시 2시간 16분

 

아카이와다케

이곳에서 주저 앉아 또 행동식을 먹었다

잠시 뒤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리더니

2명이 또 휙~~~ 지나간다

난 잠시 뒤에 출발했다

그러나..

보이질 않는다?

뭔 속도가 이리도 빠르다냐..

여자들이..

내가 알고 있는 몇몇의 빠른 여자들이 떠올랐다

 

20여분을 걷다가 나온 돌무더기

동양권의 문화는 조금씩은 비슷한거 같다

10월 초 이지만

이곳은 이때부터가 동계로 접어드는 시기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침

운행용 자켓을 입었다

 

하그로프스 토케이 자켓

운행용 소프트쉘 종류가 여러 브랜드에 있으나

내가 선택한 기준은 단 하나

'팔목을 조절할 수 있는가?' 였다

그 유명한 아크의 감마 MX는 조절이 안되서 어쩔 수 없었다 ㅋㅋ

 

등산화는 한바그 알래스카

모두 이날을 위해 준비한 것들이다!!

잠시 뒤..

저 동그라미는..사진 속에서나 보던 이정표!!

이제 본격적인 북알프스의 등산로로 걸어가게 되는 것인가?

흇테 니시다케가 보인다

모든 블로그에 불친절의 대명사로 나오는...

그래서 나도 싫다

니시다케 정상 가는 길

난 패스~~~~~

산장에 도착해서 본 야리가다케..

화장실에 몰래? 들려서 볼일을 보고 나와

내가 분명 먼저 출발했음에도!!

나보다 늦게 출발했음에도!!

먼저 와 간식을 먹고 있던

일본 친구에게 한장 부탁한 사진

내가 가야할 곳은 왼쪽!!

 

잠시 쉬며 가야할 곳을 본다

계획표엔

분명!!

'가장 위험구간 시작 (암릉, 철 사다리 구간)' 이라고 적혀 있다

 

09시 32분

드디어 오모테긴자 코스 중 가장 난이도가 있는 구간에 들어섰다

이 구간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무수히 노력했으나

'오르막 내리막이 연속이며 위험하다'

정도 뿐이었다

그 난코스의 첫번째 사다리 구간

이런 통나무 사다리라니..

군데군데 생채기를 내 놓은 것은 미끄러지지 말라고 한것이다

그럴바엔 차라리 평평하게 만들어 놓던가..

 

경사가 꽤 심해 뒤로 내려왔다

통나무 사다리를 내려오니 다른 철사다리 구간

여기도 뒤로 조심조심 내려왔다

우리나라의 사다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

어딘가 부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사다리를 내려와 앞을 보니 까마득하다

저길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니..

사진을 찍어준 일본 친구는 벌써 저 만큼이나 앞서 버렸다

시간상으론 거의 10분 정도는 차이 나는 듯하다

좀더 내려와 뒤를 돌아봤다

정말 위험하긴 한 길이다

저 쇠사슬은...장갑을 착용해야지만 효과가 있지

나처럼 맨손으로 산행을 하는 사람에겐 부담스럽다

왜 쇠사슬일까? 생각을 했으나 알수가 없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관리차원인거 같다

눈과 비가 많은 지역이라 밧줄일 경우 쉽사리 부식될 것이다

쇠사슬은 녹 문제만 해결하면 될테니 관리가 훨씬 쉬울 것이다

10시 12분

산행 시작한지 4시간이 지났다

뒤돌아 보니... 많이도 내려왔구나

내려왔으니 올라간다

하지만 배고프다

먹은게 없으니 당연한 일..

이미 건너편 야리가다케 방향에서 와서 사진을 찍고 계신 일본분

사진을 어떻게 찍나 궁금하고 보고 싶었으나

말을 할 줄 몰라 그냥 지나친다

그리곤 바로 후회를 한다

이 무슨 바보같은 상황이란 말인가...

사진 찍는 분을 뒤로 하고 올라간 후 다시 내려와 뒤를 돌아보고 한장

10시 50분

미나마토노리코시

목적지인 야리가다케까지 4.5km이다

'아무리 못해도 3~4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만한 거리이다'

라고 생각했었다

이곳에서 야리사와로 탈출이 가능하다

그 후 가미코지로 가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된다

 

힘든 나는 정말 사~~~알짝~~~ 흔들렸다

 

잠시 쉬면서 행동식을 먹고...

(정말 잘 준비한 행동식!! 너가 날 살렸다!!!!)

배고픔에 지쳐갈 무렵...

11~12시에 점심을 먹어야지 하고 이동 중이라...

 

11시... 몇 분인지는 모름 (사진 찍은 시간은 11시 40분)

오르막과 내리막 다시 오르막 구간에서 드디어 점심을 먹는다

등산화를 모두 벗고..

산행 중 등산화를 벗은 적이 있었던가...

 

점심은 오오텐쇼 흇테에서 준 도시락..

짜다!!!ㅡㅡ;;

이 역시 억지로 억지로 먹는다

(하지만 이 역시 반 이상 먹질 못했다)

이 와중에 가족이 지나간다

부부와 딸...

 

젠장..나보다 분명 출발이 한참 늦은 사람들이었는데..

'내가 정말 산을 못타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단 한번도 내가 산을 잘 탄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다

그저 꾸준히... 꾸준히... 타는 정도이다..라고는 생각해 왔다

 

근데..대체 등산로는 어디인건지?

왼쪽 흙길인지..

능선같은 곳인지..

그 가족들은 이미 바로 앞 봉우리를 넘어서 버렸다

등산화를 질끈 동여매고 일어서 다시 걷는다

약간의 오르막을 지나고...짧은 철사다리?(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사다리는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ㅋㅋ)를 오르니

멀리서 보았단 계단들이 보인다

그 가족들은 이미 다 넘어서 버렸다

오르기전에 둘러본 곳은 어마어마한 산군과 계곡

저 계곡을 따라가면 길이 나올까?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란 얘기도 있지만은.. 이곳에서 그리했다가는 100%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계단을 오르기 전 셀카 한장

카메라로 셀카를 찍을 때 단점은..

내 얼굴의 상태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ㅋㅋ

저 모자 올라간 것이 멋있는 것인지 아닌지 ㅋㅋ

 

선글라스는 '루디프로젝트 impact X 변색렌즈' 자전거용이다

등산에서도 필수적으로 넓은 글라스로 바람을 효과적으로 막아준다

단점은 넓어서 덥다ㅋㅋ

 

난 장비는 용도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는 주의라..

산에서는 모두 아웃도어 전용?의 장비를 사용한다.

가끔 그렇지 않은 장비로도 산을 다니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내가 과한건가? 난 뭐지?' 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쉽게 고치긴 어려울 것 같다

셀카도 찍었고

한발 한발 앞으로 가야할 일이 남았다

저 위 사다리만 넘어가면 이 오르막 내리막 구간이 끝날 줄 알았다

아니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저 사다리 통나무로 만든거라 발 디디기도 불편한데

각도가 완만해서 서서 걷기도 나무를 잡고 걷기도 애매하다

난 잡고 걸었다

거의 팔로 엉금엉금 걷는 듯한 모습이다

올라가기 전에 다시 바라본 계곡

앞의 사진과 같은 설정값으로 찍은 것이지만

좀 더 녹색이 보이는 것은...

햇살이 많이 누그러졌다는...구름에 가려진 것인지..

통나무 사다리를 올라와 철 사다리를 내려왔다

오모테긴자의 정보를 찾다보면 많이 나오는 사진 중 하나

 

정말..

정말..

아주 정말..

허접스럽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그 오래전에 사용하다가 폐쇄된 이런 철 사다리를 보곤 하는데

그보다도 더 허접하다

 

난..

아니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참으로 편하게 등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등산로의 거적대기도, 계단도, 사다리도,

바위에 박혀져 있는 발받침도, 밧줄도..

이곳에선 감히 상상도 할수 없는 최상품의 시설들이다

 

이 사다리를 내려올 때는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두 손 꽉 힘주고 내려오면 된다

한발 한발씩

 

문제는 내려오고 나서

저 무너진 흙길 같은 길을 건너야 되는데

거리는 약 3m 정도 되려나?

이 구간이 이번 산행에서 가장 무서웠던거 같다

양쪽은 바로 낭떠러지

이곳의 모든 코스 대부분이 한쪽 또는 양쪽이 낭떠러지였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무서웠고

발걸음이 무거웠다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걸을 것인가?

후다닥 뛰어 건널까?

그런 고민을 하다가 중간을 택해 한걸음 후다닥 건넜다

 

그러곤 뒤돌아 사진을 찍었다

다행이다..라면서 ^^

13시 04분

산행 7시간 째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산이었다면 이미 하산을 완료했을 시간..

하지만..난 아직도 더 걸어가야만 한다

 

이 무렵부터 난 극도로 지쳐가기 시작했다

앞에서도 계속 언급됐지만

구토와 부족한 식사, 고산증?으로 인해 내 체력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산행 시작 전 준비한 물 1리터도 1/3 정도만 남아버렸다

산행시 왠만해선 물을 잘 마시지 않지만..

부족한 영양분으로 인해 물을 계속 마시게 됐다

 

지도상엔 이 부근이 약수?가 있는 곳인데..

아무리 찾아봐도 찾질 못했다

지도를 살펴봐도..

 

이 와중에...뒤에서 또 한명의 일본인이 날 앞질러간다

어르신이었다...

 

그냥 포기하고 걷는다

 

얼른..흇테 오오야리가 나오길 바랄 뿐이었다

시원한 레몬쥬스를 생각하며..

잠시 뒤에 본 고드름

벌써 얼기 시작하는 것이다

순간..이게 약수인가? 란 생각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 이미 정상적인 사고 판단은 어려웠던 것이었나? 란 생각이 든다 ㅋㅋㅋㅋ

13시 28분

드디어 도착한 흇테 오오야리

 

위 약수? 사진부터 20여분 걸렸는데

그 시간이 정말 길었다

지쳐서.. 지쳐서..

한발 한발이 힘들었다

 

산장이 보이기 시작한 곳에서 약간 내려가야 하는데

먼저 날 추월했던 몇몇 사람들이 보인다

그 중 계단에 앉아 담배피는 여자

 

일본에선 산행 중 흡연이 가능하다

그들은 철저하게 담배재를 처리한다

 

도착하자 오렌지 쥬스를 하나 사서 원샷..

잠시 쉬면서 행동식 몇개 주워먹고

화장실을 다녀온다

13시 44분

10여분을 쉰 후에 다시 출발한다

새벽에 저 멀리 보이던 야리가다케가 이젠 눈 앞이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이다

 

이제 1시간 정도만 가면 오늘의 산행은 끝이다

조금만 더 가자.. 참자..며 출발한다

 

여러 이정표가 있다

상고지(가미코지)

살생흇테 (일본어로 뭐라 하는지 기억안남)

참으로 신기한건..

여기서 야리가다케까지 불과 30여분 거리이다

흇테 오오야리도 30분 거리

1시간 거리에 양끝과 중간에 각각 산장이 있는 것이다

잘.. 쉽사리 이해가 가진 않는다

일본의 산장은 모두 개인들이 운영하는 것

한국에서도 작은 골목상권에 동종 업종이 여럿 있는..

그런 것인가?

또 갈림길

살생흇테와 야리가다케

난 당연히 야리가다케로 간다

왼쪽을 돌아보면 저 층층이 올라가는 봉우리는 어디일까?

모른다

물어볼 사람도.. 물어볼 수도..

안내도도..

아무것도 없다

호타카 연봉인가? 추측만 할 뿐..

13시 49분

이젠 정말 코 앞이다

산장도 보이기 시작하고

야리가다케가 바로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은 10월..

저 눈은 작년에 온 눈이 아직도 녹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만년설...

살생흇테로 가는 마지막 길? 이다

그리고 가미코지에서 부터 야리가다케로 가는 길이 보인다

가미코지 코스는 야리가다케까지는 쉽게 올라가고

호타카 연봉에서 목숨걸고 산행을 해야 하는..

그런 코스이다

14시 14분

앞선 사진에서 25분이 지났다

거리가 살짝 줄었다..

 

그런데..

난 이미 방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치면

방전 경고가 이미 들어와 있고..

셧다운되기 일보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다

 

한발 한발이 너무도 무거웠다

많은 생각을 하면서..

힘듦을 잊기 위해 딴 생각도 해봤다

 

그것이 더욱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지도 모른채..

잠시 쉬어간다

카메라 2대를 가져와 사진 찍으시는 분을 보며..

 

왼쪽을 다시 한번 보고..

왔던 길을 되돌아 보며..

14시 50분

흇테 오오야리에서 출발한지 1시간이 살짝 지났다

 

아..1시간이면 간다며!!!

이게 어떻게 1시간 거리야!!

라고 투덜대며 걷는다

 

이 구간에 진입하기 전에 약간 위험한 구간이 있었다

니시다케 지나서 철 사다리 구간만큼의 두려움은 없었으나

이미 방전 직전인 나는 왠지 불안불안 했었다

게다가 반대 방향에서 사람도 내려오고 있었다

 

이 지점 전후로 정해진 길로만 가야한다

보이는 것처럼 엄청난 너덜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너덜길은 양반에 속하는 것 같다

 

야리가다케 정상 바로 밑을 지나간다

너무도 힘들었다

 

등산을 하면서 이렇게 힘든 적이 있었던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난 종주의 경험이 별로 없었다

2016년에 설악 공룡능선, 지리산 화대종주, 청광종주를 도전했지만

모두 비로 인해 중간 탈출한 경험 뿐이었다

 

물론 2016년에 호도협과 옥룡설산 트레킹이 있긴 하지만

그건 이번 산행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럼에도 이곳에 온 것이다

도전? 그런 것 따윈 없다

그저 가보고 싶었을 뿐..

14시 54분

4분 지났다

그 4분이 너무도 더디고 힘든 시간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이정표에 500m 라고 적혀 있었던 것 같다

산행이라 해도..5분여거리..

 

'내가 이리도 힘든 것은 왜 일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연속된 구토로 인해?

체력 훈련, 운동이 부족해서?

장거리 산행 경험이 부족해서?

낯선 환경에서 혼자 산행을 해서?

 

아..모르겠다

왜 그런건지

그저 난 힘들다

이 생각 뿐이었다

 

이렇게 무거운 발걸음은 처음이었다

난 이리도 무거운 발걸음을 하고 있구나..

왜..

왜..

도대체 왜..

내 삶은..

내 인생은...

이리도 무겁고 힘든 것이구나...

이 순간을 견디고 극복하면 알 수 있는 것인지..

무언가를 깨닫을 수 있을 것인지...

이정표를 지나 눈앞에는 정말 100m만 가면 될 거 같았다

이때 난 방전 되어 버렸다

다리에 의존보다는 거의 스틱에 의존해서 아주 느리게 느리게 한발 한발 내딛었다

 

옆의 야리가다케 정상도 관심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저길 또 올라간다고?'

'못 간다!!'

'안 간다!!!'

난 어차피 정상석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놈이다

내가 왔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자랑하고픈 마음도 별로 없다

그래서 안 가기로 했다

 

저 계단 끝에 가면

끝난다

그리고 누군가가 기다릴 것 같았다

그러길 바랬다

나의 힘듦을 알아줄..

내 어깨를 고생했다며 두드려 줄 누군가가...

 

힘든 것보다..

질려버렸다는 표현이 맞을 듯 하다

 

난...

이런 너덜길과 오르막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질 않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정보가 없었다

위험구간..힘들다.. 이런 정보 뿐..

 

후회를 많이 했다

좀 더 준비를 했어야 했다고

정보도

운동도

마음가짐도

 

소홀했다고..

 

그러나..실제로.. 숙소 문제를 빼곤

등산과 교통에 관련해선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은 모두 확인을 했다

단 하나의 문제도 없었다

계단이 끊날 무렵...

어디선가 한국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 이리도 반가울 수가!!!

세상에서 가장 그립고도 고마운 말들이었다

 

15시 06분

산장 앞에 도착하자 마자 찍은 야리가다케의 정상

이것을 보기 위해 그 고생을 했다

잘 했다!!!

산장에서 그 한국말의 주인공들..

전라도에서 오신 선후배분들

 

내가 힘겹게... 힘겹게..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고 하셨다

괜찮냐고..

혼자 왔냐고..

어디서 왔냐고...

괜찮으면 같이 밥 먹자고..

 

난... 불편해서 사양을 했었다..

하지만 계속된 권유와 지쳐버린 난 누군가에게 의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함께 했다

 

이게 얼마만에 보는 한국 음식인가 (3일만이다 ㅋㅋ)

김치찌개에 햇반을.. 먹었다

입맛은 여전히 없었지만..(진이 빠진 상태라 더욱..)

초상권이 있지만..

내겐 정말 고마운 분들이라..

 

이분들의 코스는 가미코지에서 호타카

국내 산행은 많이 다니셨고

왼쪽 분은 100대 명산 중 남양주 천마산만 가시면 완주를 하시게 된다

이미 완주를 하셨을 것이다

 

모든 음식을 바리바리 가져오셨다

술도..밥도..반찬도..

나에게 술 무게 줄여야 된다고

먹어야 된다고..

 

난 전날의 고산증?을 겪어 술은 조금만 마셨다

그러나 이 분들은.. 그냥 드신다

 

근데.. 이분들 엄청 추울텐데 그냥 견디고 있다

내가 춥지 않으세요?

옷을 껴입는게 좋을거 같은데요

라고 몇번을 말해도

그냥 계셨다

 

그러면서 오히려

 

내게..

정상에 안 올라가냐고

힘들어도 갔다 오라고..

후회할 지도 모른다고....

진심어린 말씀을 해주셨지만.. 난 싫었다

더 이상은 저 너덜길을 걷고 싶지 않았다

정상을 올라가는 길은 짧지만 위험한 건 만만치 않았다

유튜브에 많이 나와 있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저 곳을 오르기는 위험부담이 너무나도 컷다

식사를 마치고 간단히 짐들을 정리하고..

 

난 미리 준비해간 샤워타월과 헤어타월로 온 몸의 다 닦아냈다

그리고 역시 준비해 간 파스로 무릎을 냉찜질을 했고

휴족시간으로 종아리와 발바닥을 식혔다

 

옷을 갈아입고..

일몰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온다

이 사진도 굉장히 맘에 든다

나의 힘듦이 고스란히 보인다

비록 핸드폰으로 보게되면 밝기 때문에 거의 보이지 않는 표정이겠지만...

 

이틀간의 어려움을 견뎌내고 목적한 바를 모두 이루고

무사히 이곳에 서 있는 나

만감이 교차한 순간이었다

형님들이 일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야 된다고

봐둔 곳이 있다고 해서 가봤으나

잘못된 장소

난 본의아니게 다음날 코스를 찾게 되었다^^

야리가다케와 일몰을 배경으로 한장

그리고

나도 한장..

 

17시 42분

이 사진을 끝으로 산장 안으로 들어간다

 

산장에 도착했을 때..

이 곳은 거의 한국이었다

어디서든 한국말이 들렸었고

저녁을 먹는 순간에도 한국인들이 지나가면서 서로 인사를 했다

 

아직 취침까지 시간이 남아 있고

체온이 올라오지 않은 나는 휴게실? 난로에서 몸을 덥히고 있었다

 

단체로 온 한국인들은

가미코지 ~ 호타카 연봉 코스이다

 

내게 위 형님들이 했던 것처럼

어디서 왔냐고

괜찮냐고

혼자서 대단하다고

자신들은 힘들다고..

고산증도 좀 있는 거 같다고..

많은 말들을 했다

 

근데... 연세가 좀 계신 분들도 계신데..

괜찮으실지.. 걱정이 앞선다

 

그렇게 1시간 여를 보내고

내일 날씨를 확인한다...

눈비 온단다ㅡㅡ;;

 

아..죽었다

형님들은 다이기렛토를 건너야되는데...

조금의 걱정들을 하지만 부딪혀 보기로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잘 준비를 하고

우리는 난로앞에 앉아 조금더 얘기를 하고 잠든다

 

내일 아침은 같이 하기로 하고..

형님들 덕분에 난 저녁과 아침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

 

 

산장은 2층 침대

근데...사다리 위치가 이상한 곳에 있어서 사용하기가 너무 불편했다

 

어쩔 수 없지..

 

이번에도 다행히도 옆자리가 비어있었다

남은 이불을 내가 덮는다

내 몸 내가 지켜야지 하면서..^^

 

그리고 고산증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잠든다

하지만 역시나 잠자리 바뀌면... 잘 못자는 나는

몇번이고 깨서 화장실가고 보조배터리 충전은 잘되고 있는지..

확인한다

 

그래도 다행인건 춥지 않고 고산증은 오지 않았다는 것

컨디션이 회복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06시 16분 산행 시작

15시 06분 산행 종료

 

산행 시간 8시간 50분